해외서 살다 보면 한국에서 살 때는 너무 당연해서 잊고 있던 것들이 사실은 대단한 것들이었다고 느끼는 때가 종종 있다. 최근엔 아시아권에서만 좀 알아주던 K팝, K드라마, K무비 등이 서구권까지 퍼지게 되면서 새삼 한국이 얼마나 발전했고, 유명해졌는지 내가 알려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특히 나는 10년 전 캐나다에서 잠시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 다시 캐나다로 돌아온 케이스이기 때문에 그때와 지금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비교가 확실하게 된다.
10년 전에 내가 한국인이라고 소개했을 때 정말 50% 이상의 사람들이 물어봤던 것이 "너 남쪽에서 왔어 북쪽에서 왔어?"였다. 일부는 농담이기도 했지만, 나머지는 정말 진지하게 물어봐서 약간 짜증이 날 때도 더러 있었다. 그럴 때면 "너는 북한 사람 얼마나 만나봤니? 뉴스는 보니?"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금보다 더 소심했고 지금보다도 영어를 더 못했던 나는 그냥 얼굴만 살짝 찌푸리고 그 순간이 지나가길 바라는 게 다였다.
10년 뒤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 살기 시작한 지 3년 반정도가 된 지금, "남한에서 왔어, 북한에서 왔어?"라고 되물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신 "나 한국음식 진짜 좋아해", "한국 드라마 봤어!", "한국 화장품 좋아해!" 같은 이런 호감의 표현들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긍정적으로 봐주는 분위기가 생긴다는 게 그저 신기하고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넷플릭스에서도 그걸 자주 느낀다. 몇 년 전부터 킹덤, 오징어 게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한국 드라마들이 하나둘씩 히트를 치기 시작하더니, 한국에서도 좀 크게 흥행이 된다 싶은 넷플릭스 드라마는 어김없이 캐나다 Top10 리스트에 등장하는 것 같다.
이번에 한국에서도 엄청 흥했던 더 글로리도 그랬다. 캐나다 방구석에 앉아 열심히 보면서도 '이거 재밌긴 한데, 이런 느낌의 복수극도 캐나다서 인기가 있을까?'이런 생각이 잠깐 했었는데, 그건 내가 잘못짚은 것이었다. 이번에 더 글로리도 캐나다 top10시리즈에 당당히 진입해 있는 게 아닌가.
아쉽게도 캡처를 9위일 때 밖에 못했지만 나중에 5위까지 올라갔던 걸로 기억한다. 이렇게 한국스러운 복수 드라마가 캐나다에서도 먹힌다니..
또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여기 캐나다 드라마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캐나다 모습을 보여주는 캐나다 드라마를 추천한다고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때 추천한 드라마 중 머독 미스터리에서 한국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다루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사실 요즘 한국이 인기가 있는 것은 모던한 이미지와 대중문화 때문임에도, 이 에피소드는 한국을 중심으로 벌어진 식민시대와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 편을 들면서 이야기하거나 내용을 엄청나게 무겁게 다룬 건 아니었지만, 김정은이 미사일 쏘는 것이나 대중문화만 관심이 있어 보이던 이곳도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역사의 한 부분에도 관심을 가질 정도로 인지도가 생겼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런 것들이 쌓이고, 또다시 10년이 지나면 '가장 한국적인 게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정말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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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2 - [추천과 리뷰] - 넷플릭스에 있는 캐나다 드라마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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