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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으로 살기

캐나다에 살면 영어 이름을 꼭 지어야 할까?

by _해봄 2022. 12. 11.

나는 지금 캐나다 캘거리에서 3년 반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 도착하고 지금까지 '영어 이름을 사용해야겠다'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사용한 적도 없었다. 더욱이 나는 내 한국 이름에 너무 익숙해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 '내가 아니게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 내 한국 이름 그대로 사용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캐나다를 온터였다. 그런데 최근 나는 심각하게 영어 이름 짓기를 고민하고 있다.

 

내 이름이 그렇게나 어려웠어?

예전에 토론토에서 1년 정도 산 경험이 있는데, 그 당시에도 나는 내 한국 이름을 썼다. 그때 만났던 외국인 친구들도 다 내 한국 이름을 불러주었고 그 친구들이 '내 이름을 어려워하고 있구나'라고 느낀 적이 정말 없었다. 그래서 캘거리로 올 때에 여기 사람들이 내 이름을 어려워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캘거리에 와서 나는 곧바로 컬리지에 들어갔는데 대부분의 선생님, 아니 모든 선생님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걸 어려워했고, 졸업할 때까지 제대로 발음 해준 선생님은 없었다. 나중엔 그렇게 부르면 '아 나를 부르는구나'하고 내 귀가 적응해 알아서 대답하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의 어려움도 이해가 가는 것이 나도 유럽 어느 나라의 생소한 언어의 게다가 발음까지 어려운 이름을 부른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다.  

 

"이제까지 나는 내 이름이 쉽다고 생각했는데.. 스펠링도 쉽고 다른 이름보다 짧고. 그리고 토론토에 있을 땐 다들 쉽게 불러 줬던 것 같은데.. 이상하네.. 그렇게나 어려운가."

 

토론토에서의 경험이 있었다 보니 이런 의문의 들었어도 그냥 나는 내 한국 이름을 고수했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길 꺼려한다.

3년이 지난 지금 이제야 나는 정말 심각하게 영어 이름 만들기를 고민한다. 최근 자주는 아니지만 괜찮은 밋업이나 이벤트가 있으면 한 번씩 참여하려고 하고 있다. 나는 지금 이직도 계속 생각하고 있고, 그러기 위해선 사람들 많이 만나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리고 일단 나는 정말 친구가 없다. 컬리지에서 만난 친구들은 나이 차이가 너무 나다 보니 학교를 졸업 후 문화 차이+세대차이로 공통분모가 사라져 자주 안 만나게 되고, 학교 밖 친구들은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거나 캘거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기운이 빠지는 극 I인 사람이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상당수가 내 이름을 부르길 꺼려한다. 물론 내 영어를 듣고 '편하게 말하기 어려운 상대구나, 내가 노력해서 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해 나를 굳이 불러서 이야기를 해야 하나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 한 밋업 이벤트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솔직히 인종차별을 했던 건진 모르겠지만 내 소개 이후 내 바로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나에게 한 번도 말을 걸지 않고 심지어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내 이름을 어떻게 다시 불러야 할지 몰라서가 아주 큰 것 같았다.

 

'네 이름 이렇게 발음하는 거 맞아?', '잘못 발음했다면 미안해', '네 이름 다시 말해줄 수 있어?'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과정도 싫어서 부르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거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 있다 보면 자연스레 그걸 느끼게 되기도 한다. 이런 일이 자주 생기니 '내가 고집부린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엔 같이 일 하는 백인 동료에게 '내 이름이 그렇게 어려워?'하고 물었더니 맨 처음에 내 이름을 들었어도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몰라서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이름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도 큰 의미가 있지만 상대방에게도 의사소통의 도구 중 하나기도 하니까 말이다. 특히 이름이나 닉네임을 부르는 게 엄청나게 익숙한 이 북미 문화권에서 '부르기 어려운 이름'은 그들에게 매력적인 도구가 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내가 엄청난 인싸여서 내 이름이 그들 뇌리에 각인될 만큼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도 아니기도 하고. 

 

 

또 다른 이름과 정체성

그래서 나는 영어 이름을 지으려고 한다. 생각보다 나와 어울리는 영어 이름을 찾는 게 아주 어려운 일이라 심심할 때마다 예쁜 영어 이름, 의미가 좋은 영어 이름, 소리가 좋은 영어 이름 등을 찾아본다. 내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의 노고를 다시 느끼는 순간이다. 첫 아이가 태어나 무어라고 이름을 지어주면 좋을지 얼마나 고민하셨을까. 이런 마음이 들어서 3년 동안 영어 이름 짓기를 망설였는지도 모르겠다.

 

영어학원을 다녀본 대부분의 한국사람이라면 있을 영어 이름이라면 나도 두어 개 가지고 있지만, 그때의 영어 이름은 학원 안에서만 사용하는 제한된 이름이었다. 학원 밖을 나가면 아무도 나에게 그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없었고, 나도 자연스레 그 시간에만 그 영어 이름을 가진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이번엔 정말 다르다. 캐나다에 장기로 거주하길 희망하는 나는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새로 지은 영어 이름으로 나를 소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별로 친해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내 한국 이름은 영영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내 한국 이름을 전혀 부르지 않는 사람들도 있게 될 거다.

 

대신 나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 문화 속에서 거의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지만 또 캐나다에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 정의 내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또 나와 가까워지는 사람들은 혹은 나에게 흥미가 있는 사람들은 한국 이름도 물어보겠지. 내 한국 이름은 영영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영어 이름 안 지어도 되고, 지어도 되고 하고 싶은 대로 하자

이건 답이 없는 문제였다. 짓고 싶으면 짓고 말고 싶으면 말고. 가끔 '한국사람이면서 왜 영어 이름을 써요?'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뭔 상관인가. 나처럼 상대가 이름을 부르기 어려워해서 지을 수도 있고, 해외에 사는 김에 그 문화에 완전히 섞이고 싶어서 짓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그냥 짓고 싶어서 짓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요즘은 한국 회사에서도 수평적인 관계를 위해 영어 이름을 만들어 쓴다는데(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어 이름 생겨서 좋은 사람은 만들고, 한국 이름 그대로가 좋은 사람은 그대로 두자. 이건 각자가 답을 가지고 있고 나처럼 뒤늦게 답이 바뀌기도 하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나에겐 어떤 영어 이름이 좋을까. 이름 짓기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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